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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 사람들도 성령을 알았을까? - 도서 <구약의 성령론>

도서 리뷰/구약 리뷰

by 굴러가는오렌지 2021. 11. 1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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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드 R. 니브의 <구약의 성령론>

 

성령이 공식적으로 임재하셨던 사건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되었을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게 되었죠.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공식적으로 오순절 날 임재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성령이 공식적으로 임재하기 이전부터 성령의 존재를 알았을까요? 왜냐하면 '성령'이라는 단어를 성경에 검색해본다면 구약성경에도 성령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재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성령을 알고 있던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연구했던 구약 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로이드 R. 니브입니다. 니브는 뉴옥 유니온 신학대학원(Union Theollogical Seminary)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40년간 루터교 일본 선교사로 지냈습니다. 니브는 구약시대의 '영'에 대해서 탁월한 연구를 한 학자로 평가받습니다. 이 글은 니브가 구약의 성령론에 대해서 어떻게 기록하였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니브는 상당히 도발적이고 참신한 연구를 하였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니브는 '성령'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루아흐>에 집중합니다. 루아흐라는 단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성령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브는 루아흐에 세 가지의 뜻이 있다고 말합니다. 

 

<루아흐>의 세 가지 뜻

 

1. 자연적 바람

2. 사람의 숨

3. 하나님의 영

 

 

이렇게 니브는 루아흐라는 단어에 세 가지의 뜻이 있다고 밝혔습니다(28p). 그러니까 구약 성경의 어떤 본문들은 루아흐의 세 번째 뜻인 '하나님의 영'을 '성령'으로 번역한 것이죠. 하지만 니브는 루아흐를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하는 것은 가능하나, 구약의 루아흐를 인격을 소유한 '성령'으로 번역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다시 말해, 루아흐를 첫 번째 위격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영'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또 다른 위격인 '성령'으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니브는 이렇게 말합니다.

 

"루아흐는 야웨의 거룩한 의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은 루아흐를 단순히 감정 혹은 성경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 본문에서 영이 두드러지게 인격화되고 있다는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어떠한 기반들도 배제한다. 최종 결론은 압도적 부정적이다. 구약의 경계 내에서 영의 인격화는 나타나지 않는다."(242p)

 

그렇다면 니브가 루아흐를 성령이라는 하나님의 한 위격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니브는 구약 성경의 구체적인 본문 속에서 근거를 제시합니다. 니브는 주석가들에 의해 성령이라고 번역되는 대표적인 구절을 첫 번째 예로 듭니다. 우선 이사야 63장 10절입니다. 이 구절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죠.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이사야 63장 10절)

 

여기에 보면 분명히 "성령"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바로 <루아흐>라는 히브리어 단어이죠. 그리고 "근심하게 하였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이츠부>라는 동사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루아흐에게 이츠부하였다" 정도의 의미가 됩니다. 이 구절에서 니브는 루아흐와 이츠부의 번역을 재조정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단 <이츠부>라는 동사는 영의 감정을 묘사하는 자동사가 아니라, 영의 행동을 나타내는 타동사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의 히브리어 동사 문법을 살펴보면 칼, 피엘, 히필의 어떤 형태로도 영의 감정을 전달하는 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사야 63장 10절의 동사는 피엘 형태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성령으로 번역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츠부>를 어떻게 번역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니브는 이 동사를 "반대하는" 또는 "저항하는"으로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영이 "슬퍼한다"고 번역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야웨의 영을 저항해왔다"고 번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번역한다면 영이 인격을 소유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감정적인 용법이 아니기 때문이죠. 또한  여기서 야웨의 영이라는 것은 삼위의 하나이신 제 3위격, 즉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야웨의 거룩한 '의지'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니브는 <루아흐>와 <이츠부>라는 명사와 동사를 모두 살펴볼 때 성령이라는 하나의 인격체를 이 본문에서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밖에도 니브는 루아흐가 나오는 모든 본문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본문들도 마찬가지로 루아흐가 인격을 가진 영, 즉 제 삼위 하나님인 성령으로 번역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니브는 구약에서 성령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의 이러한 주장과 논리에 따른다면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성령을 알지 못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니브의 주장은 삼위일체 신학을 견지하는 입장에서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또한 성경의 번역을 건드린다는 것도 상당히 복잡한 내용이기도 하죠. 그러나 니부의 연구는 학문의 영역에서만큼은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루아흐의 모든 본문을 다루고 체계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제시하였습니다. 이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국 니브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인격을 가진 영, 즉 성령은 구약시대에 나타났던 개념이 아니라 신약시대 혹은 신,구약중간기에 와서 발전된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평가할지는 각자 개인의 몫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니브가 분명히 생각해 볼만한 주장을 펼쳤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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