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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_ 선택이 아닌 방향.

신앙 꿀팁

by 굴러가는오렌지 2023. 7. 10.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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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생이 어떤 목사님을 찾아갔다.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학생의 고민은 이런 것이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동아리에 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궁금해서 목사님을 찾아갔던 것이다. 처음 찾아간 목사님은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하라고 했다.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해서 자신의 신앙을 더 깊이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대학생은 또 다른 목사님을 찾아가서 동일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두 번째 목사님은 비기독교 동아리에 들어가서 전도 생활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대학생은 같은 고민을 두고 두 목사님에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이 학생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걸림이 되는 것

신앙인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면, 내 삶의 여러 가지 고민과 문제들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왜냐하면 도대체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이해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믿음의 확신'이다. 소위 믿음의 확신으로 기도하라고 할 때 그것은 매우 감정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1) 병드신 부모님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다가 병이 나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얻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기다렸지만 부모님은 얼마 뒤에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기도할 때 가졌던 그 강한 확신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2) 한 청년이 단기 선교에 참여했다. 단기 선교를 준비하며 끊임없이 기도했다. 그리고 선교지에 도착하여 은혜롭게 모든 사역을 잘 마쳤다. 그리고 이 청년은 하나님이 자신을 선교사로 불렀다는 강한 확신을 가졌다. 주변에서는 모두 그가 너무 성급하다고 만류했지만 끝까지 자신은 선교사로 사명을 받았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갔지만 한 학기만에 포기하고 일반 회사원으로 취직하게 되었다. 이 청년이 그때 받았던 확신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3) 어떤 학생이 청소년 수련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하게 체험했고 하나님이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수련회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으로 돌아갔다. 하나님에 대한 경험과 감격은 점점 사라져 갔고 교회도 간신히 나오는 선데이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럼 수련회에서 얻었던 그 확신은 무엇이었을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소위 '믿음의 확신'이라는 것은 매우 감정적인 상태를 가리킬 때가 많다. 그 '감정'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인지 구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경우에는 자기가 원하는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믿음의 확신'을 사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방법이다. 그것은 단지 자기감정에 불과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는데 있어서 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본적이 없으면서도 자기 주관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1)  매일 아침마다 큐티를 하는 청년이 있었다. 마음속에 짝사랑하던 여자가 있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고백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서로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읽고 그녀에게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뒤에 용기를 내어 그 여자에게 대뜸 고백을 해버렸다. 결과는 당연히 거절이었다. 이 청년의 문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었다.

 

(2) 어떤 한 사람에게 마음이 어려운 일이 생겼다. 그는 정말 간절히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다. 몇 번이나 기도해 봤지만 하나님은 묵묵부답인듯했다. 결국 성경책을 가져와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했다. 눈을 감고 성경책을 아무데나 핀 다음에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찍었다. 그리고 눈을 뜨고 성경을 확인한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지극히 우연한 결과로 치부해 버린다. 한두 번 운 좋게 적절한 말씀이 나올 수 있지만 평생에 걸쳐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는 없다.

 

이런 방법들은 모두 올바르게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기에 잘못된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을 우연에 맞기거나 자기의 욕망을 거기에 투사시키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일까?

 

2.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사람

기독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사도 바울일 것이다.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작성한 사람이면서 기독교 교리에 가장 근본이 되는 인물이다. 이런 엄청난 인물인 사도 바울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언급한 구절이 있다. 그래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에 관하여 로마서에 이렇게 기록한다.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그렇다면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는가? 그 해답은 1절에 나와있다. 하나님의 뜻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다.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거룩한 산 제물은 또 무엇인가? 사람을 불태워서 인신제사라도 드려야 하는 것일까? 물론 바울이 그 의미로 쓴 것은 아닐 것이다. 애당초에 하나님은 인신제사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너무나 추상적이기 때문에 1절을 자세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헬라어 성경에는 "너희들의 몸들을"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려야 할 거룩한 산 제물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너희"도 복수이며, "몸들"도 복수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왜 바울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형태로 기록하였을까? 그 이유는 교회가 사람들의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사람들 사이에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를 가리킨다. 교회의 연합이 거룩한 산 제물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3-5절에서 '한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하나의 몸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이 있어야 교회가 하나의 몸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무법적 정의, 283).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몸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롬 12:9-10). 사랑은 연합의 기초이다. 바울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것을 독려한다. 이 세대는 무슨 세대일까? 사랑이 없고, 무자비하며, 폭력적인 세대가 '이 세대'이다. 바울은 그러한 세대와 구별되어 '사랑의 길'을 제시한다. 사랑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은 모든 신앙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서 12장 2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사랑을 가리킨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필요하다면 자기를 희생하여 남을 살리는 것도 필요하다.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재정을 투입할 각오도 해야 한다.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시간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사랑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 세대와 구별된 삶의 방식이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이다.

 

3. 하나님의 뜻은 선택이 아니라 방향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택'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A와 B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뜻이냐는 것이다. 이 말인즉슨, 선택지에서 하나는 하나님의 뜻일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선택'의 문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그 길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사랑은 방향을 의미한다. 사랑은 어떠한 선택이 아니라, 선택들 속에서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성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지를 주셨고 우리가 그것을 맞추길 바라시는 분이 아니라, 어떤 선택지이든지 그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할 방향성을 갖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처음 예화로 돌아가보자. 어떤 한 대학생이 동아리의 가입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어떤 동아리를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선택이라는 문제에 빠지면 끝없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 대학생은 어떤 동아리에서든지 자신을 희생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실천하기만 한다면 어떤 동아리를 가도 상관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선택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이다. 기독교 동아리에서도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선택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이다. 세속적인 동아리를 가더라도,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택의 문제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올바른 신앙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사랑을 실천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오히려 사랑의 길을 외면하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할 의지와 행동력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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