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역사적 예수] 기독교 핵심 가치는? - 존 도미닉 크로산

도서 리뷰/신약 리뷰

by 굴러가는오렌지 2022. 5. 3. 17:40

본문

[역사적 예수] 존 도미닉 크로산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저 하늘 넘어 어딘가에 있는 천국에 가는 것인가? 그것이 기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일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 사람은 니체의 주장을 반드시 뛰어넘어야 한다. 필자가 이전 글에서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했듯이 니체에 따르면, 죽음 이후에 주어지는 복은 사실상 지금 아무것도 약속한 것이 없다는 역설을 말한다는 것이다. 현재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기독교는 아무런 대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니체의 비판이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 천국에 대한 소망은 신앙을 가진 자들에게 끊임없이 희망고문을 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그 대답을 존 도미닉 크로산을 통해 들을 수 있다. 크로산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공동식사'이다. 크로산에 따르면 예수는 사람들에게 공동식사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말했다고 한다(역사적 예수, 425p). 그렇다면 왜 공동식사가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가? 밥을 먹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크로산이 이야기하는 공동식사는 단순한 한 끼의 식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이야기하는 공동식사는 '아무나' 와서 참여할 수 있는 식사 모임이다. 여기서 '아무나'가 매우 중요한 단어가 된다. 아무나 식사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것은 계급, 성별, 지위, 연령을 모두 초월하는 의미이다. 예수가 살던 1세기는 계급사회이며 수직적인 사회이다. 그랬던 로마 세계에서 예수는 계급과 지위를 막론하고 완전히 평등한 식사 공동체를 제안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급진적인 사상이었다.

 

예수가 주장하는 공동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대표적으로 성찬이 그것이다. 성찬은 누가 더 많은 떡과 포도주를 가져갈 수도 없다. 모두가 동일한 양을 받는다. 힘과 권력이 있다고 해서 더 많이 먹을 수도 없으며, 힘이 약하고 권력이 없다고 해서 더 적게 먹지도 않는다. 이것이 크로산이 이야기하는 예수의 공동식사이다. 예수가 주창한 공동식사는 기존 권력 구도의 세상을 완전히 파괴하는 주장이다. 가진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지며, 없는 자는 더 많은 것을 빼앗기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모두가 공평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아무리 멸시받더라도 기독교의 식사 공동체에서는 모두가 공평한 권리를 가진 자로 대우받게 된다. 이것이 크로산이 주장하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이다.

 

크로산에 따르면, 예수가 이러한 급진적인 공동식사 모임을 주장했기 때문에 결국 사형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평등하다는 예수의 주장은 기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매우 거북한 소리였다.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곳은 제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장소였다. 그들은 '올바른 제사'라는 명목으로 가난한 농민들의 재산을 탈취했다. 지나치게 비싼 제의 비용으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고 부한 자들은 더욱 부해졌다. 그래서 예수는 이러한 성전 시스템에 반기를 들어 그것을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는 예레미야나 이사야처럼 '상징행위'를 통해 성전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생각해 보라, 예수의 이러한 행동이 당시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좋아 보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자들은 위험한 사상을 가진 예수를 반드시 죽여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로산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는 '평등'이다. 이 세상에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예수가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교회는 어떨까? 크로산이 주장하는 예수의 모습을 통해 현대 한국 교회를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이게 될까?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나 권력지향적이다.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여 예수가 이야기하는 공동식사의 정신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 내부적으로도 지나치게 수직적인 구조가 있다. 목회자와 목회자 사이, 목회자와 성도 사이, 성도와 성도 사이에 수직적인 구조가 있다. 이것은 예수의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교회에 가면 담임 목사를 위한 식사 자리가 따로 있으며, 장로가 식사하는 자리가 따로 있고, 일반적인 성도가 식사하는 자리가 따로 있다. 심지어 그 음식의 양과 질에도 차이가 있다. 예수는 이러한 수직구조를 만든 적이 없다. 지금 한국 교회는 평등의 가치를 잃어버렸다는 점에서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만약 예수가 지금 한국 교회에 다시 나타난다면,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것처럼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크로산은 이런 교회를 향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을까? 저항하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을 향해 예수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그들에게 굴복하지 말라고 말한다. 크로산은 로마 카톨릭에서 20년 간 사제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로마 카톨릭의 교권 제도와 수직적 구조 때문에 결국 카톨릭에서 떠나게 되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가 수직적이고 권력지향적이라면 그 교회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예수의 공동식사의 가치를 따르는 교회로 이동하거나 그런 교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